비와 장수와 재물의 신 - 칠성신(七星神)
칠성신(七星神)은 '비의 신'으로서 기우(祈雨)의 대상이며 또는 인간의 장수와 재물을 관장하는 신등으로 다양하게 신앙되었다. 이는 천체와 별을 신앙하는 도교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이러한 신앙형태는 궁중과 민간신앙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불교 신앙에도 영향을 주어 오늘날의 사찰에도 많은 칠성각(七星閣)이 남아있어 인간의 무병장수와 재물을 기원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에게는 물과 비[雨]를 비는 신앙은 필연적이었고 그 대상이 바로 칠성신이었다. 불교적 행사일인 칠석(七夕)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이것은 칠석과 칠성신의 밀접한 연관에 기인한다.
부군(밖) 칠성
또한 남두칠성과 북두칠성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둘 때 단명(短命)을 타고난 소년이 가서 장수를 부탁하니 북두칠성으로부터 수명을 연장 받았다는 설화에 연유하여 '칠성님께 명(命)을 빌며' 북두칠성을 향한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
제주도의 무가(巫歌) '칠성본풀이'에서는, 절에 불공을 드려 낳은 외동딸이 중의 자식이라 집에서 쫓겨났다가 뱀으로 변신하여 일곱 마리의 뱀을 낳았는데 모두 딸이었다. 막내딸이 뒤꼍 주저리 밑으로 들어가 부군칠성(밖칠성)이 되었고, 어머니는 쌀독에 들어가서 부자가 되게 하는 안칠성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재물과 소원성취의 신적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칠성신은 기우, 장수, 재물의 세 가지 기능을 가지며 우리 민족의 중요한 민간신앙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칠성제와 기우제
흔히 7월에 지내는 색다른 제사로 '칠성제'와 '기우제'가 있다. 절간에는 '칠성당'(북두칠성을 신으로 생각하고 모신 집)이라는 데가 있는데, 이 칠성당이나 또는 산과 냇가의 깨끗한 곳을 가려서 백반과 맑은 물을 차려 놓고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지낸다. 이것을 칠성제라고 한다. 칠성제는 칠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칠성신에는 북두칠성신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절에는 산신각(산신을 모시는 집)과 나란히 칠성당이 있는 것이다. 칠성신은 사람의 수명을 맡고 있으며, 인간의 모든 일에 만능의 힘을 미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칠성신에게 정성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기우제는 여름에 가뭄이 계속될 때 비를 내려 달라고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옛날에는 비가 안 오는 것이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의 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임금이 스스로 기우제를 지내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민간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일이 많다. 기우제는 보통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차려 놓고 지낸다.
칠석 물맞이
칠석날에 내리는 빗물은 약물이라고 하여 이 물을 받아서 목욕을 하면 땀띠, 부스럼 등 피부병에 좋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 날을 기하여 산간계곡의 약수터, 폭포 등을 찾아가서 목욕하는 풍속이 있었다.
칠석놀이
견 우·직녀 두 별을 보고 소원성취와 칠석요(七夕謠)를 부르며 여인들은 바느질, 수놓기 대회를 하고, 남자들은 새끼 꼬기, 농악, 씨름, 공부하는 소년들은 두 별을 제목으로 하는 시를 짓기를 즐겨한다. 칠석날은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입고 밀국수와 밀전병을 만들어 먹으며, 즐겁게 보내는 날이다.
칠석기원(걸교)
칠석날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여자들이 길쌈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직녀성에게 비는 것이다. 이 날 새벽에 부녀자들은 참외, 오이 등의 초과류(草菓類)를 상위에 놓고 절을 하며 여공(女 功:길쌈질)이 늘기를 빈다. 잠시 후에 상을 보아 음식상 위에 거미줄이 쳐져 있으면 하늘에 있는 선녀가 소원을 들어주었으므로 여공(女功)이 늘 것이라고 기뻐한다.
혹은 처녀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은 다음,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바느질 재주가 있게 해 달라고 비는데, 다음날 재 위에 무엇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풍속은 직녀를 하늘에서 바느질을 관장하는 신격으로 여기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원래는 칠석날 밤에 궁중이나 민가의 부녀자들이 바느질감과 과일을 마당에 차려 놓고 바느질 솜씨가 있게 해 달라고 널리 행하던 중국 한대(漢代)의 걸교(乞巧)의 풍속을 따른 것이다. 이 풍속은 당대(唐代)에 와서 주변 민족들에 전파되었는데, 우리 나라의 칠석 풍속은 중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 날 각 가정에서는 밀전병과 햇과일을 차려놓고, 부인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 족의 수명장수와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기도 한다. 또 이북지방에서는 이 날 크게 고사를 지내거나 밭에 나가 풍작을 기원하는 밭제[田祭]를 지내기도 한다.
칠석맞이
중부지방에서는 '칠석맞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단골무당에게 자녀의 무사 성장의 기원을 부탁하는 것이다. 무당은 물동이를 타고 기원의 상징인 명다리를 내어 바람에 불리고, 다시금 무사 성장의 기원을 한다.
쇄서폭의
한 편 7월이면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시기이다. 농가에서는 김매기를 다 매고 나면 추수때까지는 다소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장마를 겪은 후이기도 한 이때, 농가에서는 여름 장 마철 동안 눅눅했던 옷과 책을 내어 말리는 풍습이 있다. 이를 쇄서폭의( 書曝衣)라 하는데, 이 날은 집집마다 내어 말리는 옷과 책으로 마당이 그득하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7월 7일조에도 인가에서는 옷을 햇볕에 말린다 하여 이는 옛날 풍속이라 하였는데, 이 날에 내어 말리는 옷과 책의 수량에 따라 잘살고 못사는 것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최남선의《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칠석은 원래 중국의 속절(俗節)로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공민왕(恭愍王)은 몽고 왕후와 더불어 내정에서 견우·직녀성에 제사하였고, 또 이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製)의 과거 를 실시하였다고 하였다. 다양한 생활주기와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오늘날 칠석의 풍속은 다만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동 심의 세계에 꿈을 부풀리는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